도시에서 걷기 싫어지는 거리의 공통점

사람이 아니라 ‘통과’만 상정된 거리
걷기 싫어지는 거리에는 공통된 분위기가 있다. 머물라는 신호가 없다. 벤치도 없고, 그늘도 없고, 잠깐 멈춰 서도 괜찮아 보이는 지점이 없다. 이 거리의 목적은 단 하나다. 빨리 지나가라는 것.
차량 위주로 설계된 도로, 넓은 차선과 좁은 인도,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몸 둘 곳 없는 횡단보도 앞 공간. 이 모든 요소는 사람에게 “여긴 네 자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걷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높인다. 천천히 걷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거리에서는 걷는 행위가 이동이 아니라 버티기에 가깝다. 목적지가 있어서가 아니라,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발걸음을 옮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생각에 잠길 틈도 없다. 걷는 사람의 몸은 계속해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도시는 원래 다양한 속도가 공존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걷기 싫어지는 거리는 오직 하나의 속도만 허용한다. 빠른 속도. 느린 사람은 방해물처럼 느껴지고, 서 있는 사람은 어색해진다. 결국 걷기 싫어진다는 건, 그 거리가 사람의 리듬을 거부하고 있다는 신호다.
풍경이 아니라 구조만 보이는 거리
걷기 좋은 거리는 눈이 바쁘지 않다. 반대로 걷기 싫어지는 거리는 시선이 계속 끊긴다. 높은 담장,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 벽, 반복되는 간판, 창 없는 건물 외벽. 이 거리에서는 볼 게 없다기보다, 보고 싶어질 만한 게 없다.
사람은 걷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주변 풍경에 몸을 맡긴다. 나무, 창문 너머의 불빛, 가게 안에서 나는 소리, 길모퉁이의 작은 변화들. 이런 요소들이 있어야 발걸음이 이어진다. 하지만 구조만 드러나는 거리에서는 시선이 계속 벽에 부딪힌다.
이때 걷기는 지루함을 넘어 피로로 바뀐다. 단조로운 풍경은 생각을 확장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몸의 감각만 또렷하게 만든다. “왜 이렇게 길지?” “아직도 남았나?”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거리의 길이는 실제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걷기 싫어지는 거리는 대부분 사람의 시선 높이를 고려하지 않은 공간이다. 위에서 내려다본 지도에는 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아래에서 걷는 사람에게는 너무 크고, 너무 단단하고, 너무 무표정하다. 이 무표정함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괜히 여기 있는 느낌’을 주는 거리
걷기 싫어지는 거리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이것이다.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느낌. 너무 텅 비어 있거나, 반대로 너무 바쁘게 돌아가서 걷는 사람이 어울리지 않는 공간.
물류창고 앞 도로, 대형 오피스 빌딩 사이의 길, 밤이 되면 불이 모두 꺼지는 상업지구. 이곳에서는 걷는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다. 언제든 불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거리에서는 괜히 자세를 고치게 된다. 걸음이 어색해지고, 휴대폰을 더 자주 보게 되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거리 자체가 “너는 잠시 스쳐 가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걷고 싶은 거리는 묘하게 사람을 숨겨준다. 혼자여도 튀지 않고, 천천히 걸어도 이상하지 않고, 목적 없이 서 있어도 괜찮다. 걷기 싫어지는 거리는 이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그 거리에서 자신을 접는다.
도시에서 걷기 싫어지는 건 게으름이나 체력 문제 때문이 아니다. 몸은 이미 알고 있다. 이 거리가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걸. 사람이 걷기 싫어지는 거리에는 늘 공통된 신호가 있다. 빠르기를 강요하고, 시선을 막고, 존재를 불편하게 만든다.
걷기 좋은 도시는 특별한 게 아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잠깐의 느림을 허용하고, 괜히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걷기 싫어진다는 건, 사실 도시가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다.
“여긴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