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빠르게 어른으로 만드는 도시
도시는 사람을 성장시키는 공간이라고들 말한다. 기회가 많고, 선택지가 넓고,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 끊임없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시가 만드는 ‘어른’은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단단해지는 것보다, 무뎌지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도시는 감정을 미룰 틈을 주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감정이 생겨도 곧바로 처리해야 한다. 슬퍼도 출근은 해야 하고, 화가 나도 약속은 지켜야 하며, 불안해도 생활은 계속된다.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정리할 시간은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 도시는 늘 다음 일정으로 사람을 밀어낸다.
이 환경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감정을 접는 법을 배운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라는 말이 습관이 된다. 울고 싶어도 참는 법, 기대했다가 실망해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법, 상처받아도 표정에 드러내지 않는 법을 빠르게 익힌다. 이게 바로 도시가 요구하는 ‘어른스러움’이다.
문제는 이 어른스러움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는 점이다. 감정을 다 느끼다 보면 일상이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시는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괜찮니?”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다음은 뭐야?” 이 질문에 익숙해지는 순간,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빨리 어른이 된다.
도시의 경쟁은 책임을 앞당긴다
도시는 비교의 공간이다. 연봉, 집, 커리어, 속도. 누군가는 앞서 있고, 누군가는 뒤처진다. 이 비교 속에서 사람들은 빠르게 책임을 떠안는다. 선택의 결과는 곧바로 개인의 몫이 된다. 실패해도, 지쳐도, 도시는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도움을 요청하는 법보다, 혼자 해결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아프면 참는 법, 힘들어도 버티는 법, 기대를 낮추는 법. 누군가에게 기대는 순간, 약해진 것 같다는 감각이 들기 때문이다. 도시는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면 바로 흔들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빠르게 현실적인 어른이 된다. 꿈보다는 계산을, 가능성보다는 안정성을 먼저 따진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우선한다. 이건 냉정해져서가 아니라, 도시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한 판단이다. 도시가 사람을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이유는, 선택을 미루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사람들의 고요한 외로움
문제는 이렇게 빨리 어른이 된 사람들이, 종종 자신이 무엇을 잃었는지 모른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감정을 미루는 데 익숙해진 사람은, 나중에 무엇을 느끼고 싶은지도 잘 모르게 된다. 책임에 익숙해진 사람은, 도움받는 감각을 잊어버린다.
도시에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늘 긴장한 사람들이 많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어른들이다. 이들은 울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잘 해낸다. 하지만 동시에 혼자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었기 때문에, 어린 마음으로 돌아갈 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도시는 이런 외로움을 잘 드러내지 않게 만든다. 다들 바빠 보이고,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밤이 되면, 혹은 일이 멈춘 순간, 문득 아무에게도 기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도시가 만든 어른의 이면이다.
도시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그 성장은 종종 빠르고, 거칠고, 되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기보다, 어른 역할에 익숙해진 사람이 되어간다.
도시에서의 어른스러움은 강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함에 가깝다. 무너지지 않는 법, 감정을 관리하는 법, 혼자서도 일상을 굴리는 법. 이것들은 분명 필요한 능력이다. 다만 가끔은,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자신을 잠시 멈춰 세워도 괜찮다.
도시는 사람을 빨리 어른으로 만든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가끔은 다시 느릴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