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은데, 이상하게 혼자인 곳
도시에는 유독 혼자 걷는 사람이 많은 구역이 있다. 관광지도 아니고, 주거지로만 보기에도 애매한 장소들. 출퇴근 시간대의 붐비는 인도와도 다르고, 주말의 번화가처럼 시끄럽지도 않다. 그런데 그곳을 걷다 보면, 유독 ‘혼자’인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걷는 사람, 휴대폰을 보지도 않으면서 일정한 속도로 걷는 사람,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천천히 이동하는 사람들. 이 구역의 특징은 사람들이 목적지로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장소는 대개 도시의 경계에 있다. 상업 지구와 주거 지구가 맞닿은 지점, 오래된 골목과 새로 지어진 건물이 섞여 있는 구역, 대형 도로 옆이지만 정작 차보다는 사람이 더 많이 다니는 길. 이곳은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혼자가 자연스러운 공간이 된다.
이 구역에서는 누군가와 대화하며 걷는 사람이 오히려 눈에 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생각을 안고 걷는다. 이곳의 공기는 말수가 적다. 대신 발소리와 바람 소리, 간간이 들리는 신호음이 공간을 채운다.

혼자 걷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관계가 느슨하다는 뜻
혼자 걷는 사람이 많은 구역은 이상하게도 관계의 밀도가 낮은 공간이다. 이 말은 차갑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느슨한 안전감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서는 시선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를 훑어보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하지도 않는다. 존재를 인지하되 간섭하지 않는 거리. 그래서 혼자 걷는 사람들이 이 구역을 선택한다. 함께일 필요가 없고, 혼자여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장소는 종종 대형 쇼핑몰과 주거 지역 사이, 오피스 밀집 지역과 소형 상점들이 섞인 거리에서 나타난다. 목적은 분명하지만, 감정은 중립적인 공간. 여기서 사람들은 스스로를 연출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표정이나 태도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비교적 솔직하다. 피곤한 표정도, 멍한 눈빛도 숨길 필요가 없다. 혼자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 공간에서는 하나의 규칙처럼 받아들여진다.
도시는 보통 ‘함께 있는 모습’을 전제로 설계된다. 식당, 카페, 공원, 쇼핑 공간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이 구역은 예외다. 여기는 도시가 개인을 잠시 놓아주는 구역이다.
도시가 허락한 가장 개인적인 이동 시간
혼자 걷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의 구역은, 사실상 도시가 허락한 가장 개인적인 시간의 통로다. 집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하기 전, 혹은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중간 지점. 이곳에서 사람들은 잠시 역할을 내려놓는다.
회사원이기 전, 가족의 구성원이기 전, 친구이기 전의 상태.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는 몇 분의 거리. 그래서 이 구역에서는 걸음이 조금 느려진다. 목적지는 분명하지만, 도착을 서두르지 않는다.
이 길을 자주 걷는 사람일수록, 이 구역을 특별한 장소로 인식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는 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이곳은 중요하다.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긴장하지 않아도 되는 통로는 도시에서 흔하지 않다.
이 구역을 걷다 보면, 도시가 항상 사람을 밀어붙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로는 이렇게 조용히 개인의 속도를 허락한다. 혼자 걷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이 공간이 누군가를 외롭게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는 혼자 있으면 외로워질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이 구역에서는 혼자가 자연스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굳이 약속을 만들지 않고, 일부러 누군가를 부르지 않는다. 그냥 혼자 걷는다.
어쩌면 혼자 걷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의 구역은,
도시가 가장 솔직해지는 장소일지도 모른다.
꾸미지 않은 사람들, 말하지 않는 생각들, 목적과 감정 사이의 빈 공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가장 도시다운 방식으로, 가장 개인적인 시간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