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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

by creator50391 2026. 1. 3.

도시는 늘 시끄럽다고 말해진다. 자동차 소리, 공사장 소음, 사람들의 말소리가 뒤엉켜 쉼 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도시는 단순히 소리가 많은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어떤 소리를 잃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새로 생기는 소음은 눈에 잘 띄지만, 사라지는 소리는 조용히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변화를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느 순간 문득, “이 소리 예전에 자주 들었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기억 속에서는 분명 선명한데, 지금의 도시에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소리들. 이 글은 그런 도시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에 대한 기록이다.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

사람의 생활이 만들어내던 소리들

예전의 도시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생활 소리’를 품고 있었다. 아침이면 골목을 울리던 빗자루 소리, 물을 뿌리며 바닥을 쓸던 소리, 창문을 열고 이웃과 나누던 인사 소리가 자연스럽게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골목마다 있던 작은 가게들에서는 특유의 소리가 있었다. 철문을 반쯤 올릴 때 나는 덜컹거리는 소리, 문을 열며 울리던 종소리, 단골 손님을 부르는 주인의 목소리. 이런 소리들은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도시의 배경음처럼 늘 존재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소리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무인 매장이 늘어나면서 사람의 목소리는 줄었고, 자동문과 전자 알림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청소는 조용한 기계가 맡고, 골목은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공간이 아니라 관리되는 구역이 되었다.

사람의 생활이 직접 만들어내던 소리는 비효율적이고 불규칙했지만, 그만큼 살아 있는 느낌을 줬다. 지금의 도시는 더 조용해졌지만, 동시에 사람의 흔적이 소리로 남지 않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골목과 동네가 들려주던 소리의 풍경

한때 동네마다 고유한 소리가 있었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들려오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놀이터에서 철봉이 흔들리며 나는 소리, 저녁 무렵 창문 너머로 흘러나오던 텔레비전 소리. 이런 소리들은 동네의 하루 리듬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골목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라 소리가 머무는 공간이었다. 누군가 집에 들어오며 문을 여는 소리, 위층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 옆집에서 나는 국 끓는 소리까지도 이상하게 정겹게 들렸다. 소리는 사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공유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개발과 함께 이런 소리의 층위는 사라지고 있다. 방음이 완벽한 아파트에서는 이웃의 생활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놀이터는 안전을 이유로 조용해졌고, 아이들의 목소리는 실내로 옮겨갔다. 동네의 소리는 줄어들고, 대신 도로에서 올라오는 일정한 차량 소음만이 남았다.

이제 도시는 공간적으로는 더 정돈되었지만, 소리로는 더 단조로워졌다. 다양한 생활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균질한 배경 소음만이 남아 있다. 이는 편안함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동네라는 개념이 희미해졌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사라지는 소리는 도시의 기억을 함께 데려간다

소리는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소리를 듣는 순간, 특정 시기와 장면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도시에서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도시가 자신의 기억을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리던 소리, 공중전화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 버스 안내양의 육성 안내 방송 같은 것들은 이제 거의 들을 수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더 효율적인 방식이 생겼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만의 정서적인 흔적도 함께 사라졌다.

새로운 소리들은 대부분 인공적이고 표준화되어 있다. 알림음, 안내음, 경고음은 정확하고 명확하지만 감정을 담고 있지는 않다. 반면 예전의 소리들은 불완전했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었다.

도시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더 많은 소리가 사라지고, 또 새로운 소리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사라지고 있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 소리들 속에는 우리가 살았던 시간, 관계, 생활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을 떠올리는 일은 과거를 붙잡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소리는 사라져도, 그것을 기억하는 마음만은 아직 도시에 남아 있으니까.